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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별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 5주년째인 1993년 사장단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불러 신경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이 회장은 당시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2류 근성을 뿌리째 뽑아내는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며 "자식과 마누라 빼고 모두 바꿔보자"고 일갈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취임 5주년째인 1993년 사장단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불러 신경영 구상을 밝히고 있다. 이 회장은 당시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2류 근성을 뿌리째 뽑아내는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며 “자식과 마누라 빼고 모두 바꿔보자”고 일갈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기업가이기 전에 사상가였다. 집념과 은둔의 경영자라고 불릴 정도로 두문불출하면서도 불쑥 시대의 화두를 던져 삼성은 물론, 한국사회 전반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놀아도 제대로 놀아라”,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 “21세기에는 1명의 천재가 10만~20만명의 직원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1987년 회장에 취임해 2014년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27년 마하경영의 변곡점마다 터졌다. 그의 마지막 신년사(2014년)는 “다시 한번 바꿔야 한다”였다.파워볼사이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5일 오전 3시59분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쓰러져 6년여 동안 기나긴 와병 생활을 이어온 이 회장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했다. 삼성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홍라희 여사,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이 회장의 마지막 순간 곁을 지켰다고 밝혔다.

이 회장의 발자취는 회장직을 맡은 지난 33년 동안 삼성그룹의 매출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1987년 매출 17조4000억원의 삼성그룹은 지난해 매출 314조원의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기간 반도체, 스마트폰, TV 등 수많은 삼성 브랜드가 세계시장의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10만명 수준이던 임직원 수는 40만명으로 늘었다. 재계 한 인사는 “세계 무대에서 ‘삼성?’이라던 물음표를 ‘삼성!’이라는 느낌표로 바꾼 이가 바로 이 회장”이라고 말했다.파워볼게임

성장을 이끈 원동력은 끊임없는 혁신이었다. 세간에서 “괄목상대”, “이만하면 됐다”는 얘기가 나올 때 이 회장은 위기론을 일깨웠다. 이건희 하면 떠오르는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신경영 선포가 나온 것도 이때였다.

이 회장 스스로가 끊임없이 자문하면서 안주하는 삶을 배척한 혁명가였다. 한번 하겠다고 마음 먹은 사업을 밀고 나가는 집념이나 추진력은 주변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부친인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마저 위험이 크다며 결정을 미룬 반도체 사업을 추진하면서 1974년 사비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일화가 유명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체제에서 삼성이 반도체에 두각을 드러내자 외신들도 주목했다. 왼쪽은 1993년 포춘지 인터뷰에서 애견을 품에 안고 사진을 찍은 이 회장. 오른쪽은 비즈니스 위크 표지 기사로 등장한 이 회장. /사진제공=삼성전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체제에서 삼성이 반도체에 두각을 드러내자 외신들도 주목했다. 왼쪽은 1993년 포춘지 인터뷰에서 애견을 품에 안고 사진을 찍은 이 회장. 오른쪽은 비즈니스 위크 표지 기사로 등장한 이 회장. /사진제공=삼성전자

이 회장과 서울사대부고 13회 졸업 동기였던 홍사덕 전 새누리당 의원(지난 6월 별세)은 생전 이 회장에 대해 “말수는 적었지만 승부를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는 싸움닭 기질을 갖고 있었다”고 회고했다.파워볼사이트

호암의 3남으로 태어난 이 회장이 호암의 후계로 낙점받은 데도 이런 기질이 크게 작용했다. 이병철 회장은 1977년 일본 닛케이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이 작은 규모의 기업이라면 위에서부터 순서를 따져 장남이 맡으면 되겠지만 삼성그룹 정도의 규모가 되면 경영능력이 없으면 안 된다”며 3남 후계 구상을 처음으로 공식 언급했다. 이 회장은 이때부터 꼭 10년 뒤인 1987년 호암이 노환과 폐암 합병증으로 별세하자 그룹을 물려받아 일생을 통해 부친의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날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을 전하면서 “이 회장 재임 동안 점차 다른 전문 경영인들이 그룹에서 더 큰 책임을 지게 됐지만 이 회장은 삼성의 ‘큰 사상가'(big thinker)로 남아 거시전략 방향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 AFP통신은 “이 회장은 삼성전자를 글로벌 테크 거인으로 변모시켰다”고 소개했다.

이 회장의 별세로 삼성그룹은 이재용 부회장 중심의 3세 경영 시대를 맞았다. 유가족은 이 회장의 뜻을 존중해 가족장을 치르기로 했다. 발인은 오는 28일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부인 홍라희 여사,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장남 이재용 사장 등이 2012년 7월29일 새벽(한국시간) 영국 런던 올림픽파크의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을 참관하기 위해 수영장을 찾아 건너편에 있는 지인과 인사하고 있다.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사진=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부인 홍라희 여사,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장남 이재용 사장 등이 2012년 7월29일 새벽(한국시간) 영국 런던 올림픽파크의 아쿠아틱스 센터에서 열린 2012 런던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을 참관하기 위해 수영장을 찾아 건너편에 있는 지인과 인사하고 있다.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사진=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심재현 기자 urme@mt.co.kr, 이정혁 기자 utopia@mt.co.kr

이건희 회장이 직접 챙긴 삼성전자 휴대폰들

삼성전자 SGH-T100. 첫번째 '이건희 폰'
삼성전자 SGH-T100. 첫번째 ‘이건희 폰’

“반드시 한 명당 한 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옵니다.”

이건희 회장이 1995년 3월 삼성전자 애니콜 15만대, 5000억원 어치를 불태우고 휴대폰 제품의 품질 향상을 강조하면서 한 이야기다. 그의 예언은 불과 5년여만에 현실이 됐다. 우리나라는 2010년 9월 가입자 5000만명을 돌파했고, 그로부터 또 7년후인 2017년 전 세계 이동통신 보급률은 100%를 돌파해 ‘1인 1 휴대폰’의 시대를 맞았다.

◇’클램쉘’ 디자인의 시작…2년만에 1000만대 팔려

이 회장이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품질과 디자인, 가격 경쟁력의 3박자를 모두 맞출 수 있도록 개발을 이끈 제품이 2002년 삼성전자가 선보인 ‘SGH-T100’과 ‘SCH-X430’, 이른바 ‘이건희 폰’이다. 당시로서는 최고 스펙인 31만 화소의 내장 카메라에 동영상 촬영기능을 지원하고, 26만 2000 컬러의 액정디스플레이(LCD) 화면과 64화음 멜로디를 지원했다.

무엇보다 지금 폴더블 폰과 함께 회자되는 이른바 ‘클램쉘’(조개) 디자인의 표본을 만든 제품으로 많은 이들의 추억에 남아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길쭉한 조약돌이나 조개를 닮은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은 전 세계 시장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불과 2년만에 전 세계 1000만대 이상이 판매되면서, 전 세계 시장에 ‘삼성전자=휴대폰’이라는 인식을 제대로 각인한 제품이 됐다.

삼성전자 SGH-E700. 일명 '벤츠폰'.
삼성전자 SGH-E700. 일명 ‘벤츠폰’.

이 제품의 후속으로 2003년 8월 선보인 안테나가 몸통 속으로 들어간 인테나폰(SGH-E700) 역시 이건희 회장이 직접 챙긴 제품으로 알려지면서 ‘벤츠폰’이라는 별명과 함께 제2의 ‘이건희 폰’으로도 불렸다. 한 모토로라 전직 임원은 “이 두 제품을 시작으로 모토로라와 삼성의 시장 점유율이 완전히 역전되고, 벌어지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오늘날 ‘삼성 모바일’ 브랜드 파워의 시작이 된 제품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삼성 ‘갤럭시’ 신화와 구글 안드로이드폰의 시대를 열다

2010년 등장한 ‘갤럭시S’ 역시 출시까지 ‘이건희 폰’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주목을 받았었다. 전작 ‘옴니아’폰이 시장에서 혹평을 받고, KT의 아이폰에 맞서 옴니아폰을 내세웠던 SK텔레콤마저 곤란한 처지에 빠지자 이건희 회장이 직접 제품 개발과 출시를 챙기면서 또 한 번의 이건희폰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3G는 물론 와이파이 접속이 가능했고, 1㎓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1500㎃h의 배터리, 그리고 손가락 압력이 아닌 터치로 화면 입력을 인식하면서 LCD보다 훨씬 밝고 화사한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화면을 최초로 채택했다. 아이폰을 능가하는, 당시로서는 압도적인 최고 사양이었다. 그해 3월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한 이건희 회장이 무선 사업부를 직접 독려하면서 “갤럭시S에 올인하라” “스마트폰 제품의 출시 주기를 앞당겨라”고 특명을 내린데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 갤럭시S. 이건희 회장이 챙긴 마지막 휴대폰.
삼성전자 갤럭시S. 이건희 회장이 챙긴 마지막 휴대폰.

갤럭시S가 나오면서부터 구글의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스마트폰은 애플 아이폰과 성능으로 경쟁할 수 있게 됐다. 한 전직 삼성전자 임원은 “그때 사내엔 갤럭시S를 놓고 ‘오버 스펙(필요보다 과도한 사양)’이라는 말도 있었고, 구글 안드로이드폰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많았다”면서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통찰과 과감한 판단이 있었기에 갤럭시S라는 제품이 나올 수 있었고, 덕분에 구글의 안드로이드폰이 지금 세계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 타계]그룹 체질개선 통해 삼성전자 시총 100배↑

(서울=뉴스1) 이동원 기자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1942년 에서 태어난 고인(古人)은 부친인 이병철 삼성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만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뉴스1 DB)2020.10.25/뉴스1
(서울=뉴스1) 이동원 기자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1942년 에서 태어난 고인(古人)은 부친인 이병철 삼성창업주 별세 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만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뉴스1 DB)2020.10.25/뉴스1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그룹 핵심계열사인 삼성전자를 글로벌 IT 기업으로 육성한 장본인이다.

1987년 선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그룹을 승계받았을 당시만 하더라도 삼성전자는 냉장고, 세탁기 등 백색가전과 흑백TV가 주력제품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해 3억대 이상의 스마트폰을 판매하고 평면 고화질 TV시장에서 8년 연속 판매 1위를 달성하는 등 명실상부 글로벌 ‘종합전자회사’로 발돋움했다.

그는 선대 숙원사업이었던 반도체 분야에서도 큰 발전을 이끌었다. 연구인력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로 후발주자에서 시장 선도자로 탈바꿈했다. 특히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장점유율 30%대 이상으로 확고한 1위를 기록 중이다.

이 회장의 이 같은 성공신화는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밝힌 ‘신(新) 경영’ 선언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당시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라며 철저한 ‘자기혁신’을 주문했다. 이는 경영승계 후 5년간 삼성그룹의 장단점과 미래먹거리 등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산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신경영 선언에 앞서 LA-도쿄-서울-프랑크푸르트-베를린-로잔-런던-오사카-후쿠오카 등을 돌며 68일 동안 1800명의 임직원과 350시간 대화를 나누며 그룹의 미래를 고민했다.

이날 이후로 삼성그룹의 체질은 대폭 바뀌었다. 소비재 중심에서 전자로 무게추가 옮겨졌다. 그룹 규모는 날로 커졌고,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도 확대됐다.

실제로 1993년 시가총액 2조~3조원 규모였던 삼성전자는 불과 2년 만인 1995년 시총 10조원을 넘어섰고 2004년 4월 13일 처음으로 시가총액 100조원을 돌파했다. 이어 2012년 3월 14일 시가총액 200조원대 시대를 열었다.

신경영 선언 이후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를 20년 만에 100배 가량 키운 셈이다.

이 회장은 선두에 안주하지 않는 위기의식을 토대로 임직원들에게 끊임없는 혁신을 주문했다. 그의 대표적인 경영론인 ‘한계돌파’, ‘마하경영’ 등은 이 같은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회장은 이밖에도 “천재 한 사람이 10만명을 먹여살린다”(2002년), “개척자로서 험난한 여정을 걷자”(2008년),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이 사라진다”(2010년), “여성이 사장이 되면 본인의 뜻과 역량을 다 펼칠 수 있다”(2011년) 등 인재·위기·여성경영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의 경영철학은 경제가 위기상황일수록 빛났다. 2009년 미국 리먼브라더스 사태에 따른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남유럽 재정위기 등 대외악재가 지속된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휘청거리거나 구조조정 풍파를 겪을 때에도 삼성전자는 성장세를 이어갔다.

실제로 연결기준 매출 100조원을 최초로 넘긴 해가 2008년(121조2940억원)이며 이후에도 스마트폰 등 IT기기 판매 호조로 비약적인 성장을 지속해 4년 만인 2012년에는 삼성전자 사상 최초로 매출액 200조원을 돌파했다. 2013년에도 이건희 회장의 격려 능력이 빛을 발하며 삼성전자는 매출 228조6900억원, 영업이익 36조7900억원으로 최대 실적을 이어갔다.

발전 속에서 이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끊임없는 혁신을 주문했다. 2013년 10월 열린 신경영 20주년 만찬회에서도 “자만하지 말고 위기의식으로 재무장해야 합니다. 실패가 두렵지 않은 도전과 혁신, 자율과 창의가 살아 숨 쉬는 창조경영을 완성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힘차게 나아갑시다”고 독려했다.

이 회장의 유고로 그룹은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이 사실상 책임지게 됐다. 이 부회장이 선대가 닦아놓은 성공신화를 이어갈 수 있을지, 특히 그룹이 당면한 스마트폰 이후 ‘미래먹거리’ 사업에서 어떤 성과를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hunter@mt.co.kr

26일 공판준비기일..이건희 회장 타계, 상주 이재용 출석 어려울 듯

(지디넷코리아=이은정 기자)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타계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내일(26일) 예정된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 불출석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송영승·강상욱)는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공판준비기일을 26일 예정대로 진행한다.

공판준비기일은 정식 재판을 시작하기 앞서 공소사실에 대한 피고인의 입장을 확인하고 향후 입증 계획을 논의하는 자리다. 공판준비기일에는 피고인이 출석할 의무는 없지만,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이 부회장에게 소환장을 발송했다.

하지만 이날 이재용 부회장의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별세하면서 재판에 출석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주로서 아버지 빈소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어서 재판에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뉴시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뉴시스)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재판은 지난 1월 공판기일 이후 9개월 만에 재개된다.

앞서 특검은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 재판을 심리 중인 서울고법 형사1부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실효성 여부를 양형 감경 사유를 삼겠다는 데 반발해 법원에 기피 신청을 냈다.

서울고법 형사3부는 지난 4월 특검이 2월 낸 기피신청을 기각했고,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기피 신청을 기각한 법원 결정을 수긍할 수 없다”며 재항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재판부 기피신청 관련 재항고를 최종 기각했다.

재판부는 준법감시제도가 효과적으로 운영되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주심이었던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을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했다. 

한편,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사건 재판 첫 공판준비기일은 지난 22일 열렸다. 

이은정 기자(lejj@zdnet.co.kr)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했다. 향년 78세.

25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이날 장기 투병 끝에 사망했다.

1942년생인 고인은 지난 2014년 5월10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입원한 이후 6년 동안 투병 끝에 사망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아들인 이건희 회장은 1987년 삼성그룹 경영 승계 이후 2014년 입원 전까지 약 27년 동안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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